은월은 멍하게 흐려진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떴다. 어디서부터,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. 잘못된 것이라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. 그는 지독한 환상에 잠겨 무력하게 늘어져 있을 뿐이었다.
*
“단테.”
으응, 단테는 나긋하게 대답했다. 은월은 늘 이 말을 해야 하는 순간이 싫었다. 더 나아가 이곳, 단테의 신전에 온 게 뒤늦게, 매번 후회되기도 했다. 그러나 그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, 온 것도 오롯이 자신의 선택이었다. 그 선택에 책임을 져야 했다. 은월은 티 나지 않게 침을 삼켰다.
“……해가 뜨면 가야 한다.”
“누구 마음대로.”
은월의 예상대로였다. 예상할 것까지도 없었다. 단테는 자신의 신전에 온 은월을 순순히 보내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. 그는 아이처럼 말꼬리를 늘리며 답하던 게 바로 몇 초 전이었는데,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대꾸하며 은월을 노려보았다. 몇 번이나 반복된 상황이었다. 은월은 언제까지고 이 페이스에 말릴 수 없다고 생각해 자신을 응시하는 흉흉한 붉은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.
“매번 떼를 쓴다고 해서 만사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. 유치한 짓은 이쯤 하도록 해.”
“싫어.”
“네가 싫다고 해서,”
은월 자신보다 작은 체구를 가진 소년의 입에서 나온, 고작 그 한마디에서 위압감이 느껴졌다. 은월이 입술을 꾹 깨물다 이를 떼고 다시금 말을 잇는 도중, 단테가 듣기 싫다는 듯 그의 말을 날카롭게 끊었다.
“무슨 소리야, 은월. 올 때도 네 마음대로, 갈 때도 네 마음대로 한다고? 불공평하잖아?”
그의 말은 그럴듯하게 들렸지만 실상은 억설과 궤변에 불과했다. 하지만 은월은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하고 말끝을 흐렸다. 단테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말을 이었다. 이대로 가서, 네 마음이 편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어? 은월은 물음에 대답할 수 없었다. 그는 ─아마 다른 이유의 불안감과 번민에서 비롯된 것일 테지만─ 단테와 만나고 돌아가며 마음이 편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. 아니, 애초부터 돌아가겠다 말한 뒤 신전을 쉽게 떠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. 하지만 궁지에 몰린 꼴이 되어 버린 은월은 말문이 막혀 그러한 것들을 떠올릴 수 없었다.
“…….”
“장마라는 핑계로 찾아오는 건 너잖아.”
은월이 앞선 단테의 말에서 이상함을 찾아냈다 하더라도 지금의 말은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었다. 궤변마저 진실로 받아들이고,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게 만드는 말이었다. 그에게는 오르비스, 그중에서도 구태여 단테의 신전이 아닌 다른 선택지도 많았다. 은월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.
“결국엔 너도 내가 필요한 거잖아.”
그게 아니면 왜 자꾸 날 찾아오는 거야, 너는 내가 없으면 안 되잖아, 단테는 은월이 다른 생각할 틈을 주지 않으려는 듯 끊임없이 간사한 혓바닥을 놀리며 덧없는 환상으로 그의 눈을 가렸다.
영웅은, 끝내 장마와 함께 뱀에게 삼켜지고 말았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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